[조소현] 국가대표란 설렘, 성장, 눈물 그리고 꿈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그라운드를 밟은 경기가 어느덧 148번째다. 월드컵부터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등 다양한 대회에서 뛰어온 국가대표팀 유니폼이 쌓여있다. 이 유니폼들은 추억의 패치와 함께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정리할 때 좀 까다로울 것 같지만, 계속 모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태극마크의 설레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대표팀에는 이장미, 유영실 등 뛰어난 선배들이 많았다. 나는 막내로 언니들의 뒤를 쫓아 첫발을 뗐다.

장미 언니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지역에 여자축구 팀이 없어 설봉중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결승전에서 장미 언니가 단독 돌파로 골을 넣었던 순간이 내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그 모습에 반해 나도 이런 멋진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후로 장미 언니는 나의 우상이 되었고, 대표팀에서 함께 뛴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유영실 언니는 하늘 같은 존재였다. 명수비수로 이름을 떨친 언니였지만, 대표팀에 들어간 나는 미드필더로 뛰게 되었다. 함께 뛰며 호흡을 맞추면서 언니는 새내기인 나를 잘 이끌어 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는데 언니가 잘 챙겨주시고 이끌어주신 덕에 지금의 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내 대표팀 생활의 시작에는 이런 멋진 선수들이 있었다고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께 소개하고 싶었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귀감이 됐던 언니들이다.

대표팀에서는 훈련시설, 숙소 등 운동 환경이 너무 좋다. 특히 파주의 잔디는 어릴 때 뛰었던 그라운드와 너무 달랐다. 그 전까지는 흙바닥에서 모래 먼지를 먹어가며 뛰어야 했다. 한 번 넘어지거나 태클하면 피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파주NFC 훈련장의 잔디는 깨끗한 양탄자 같았다. 훈련하며 맡는 풀냄새는 십수 년이 지난 아직도 좋다.

식사도 진짜 맛있게 나왔다. ‘셰프 쌤’들과 식당 어머님들이 정성스레 준비해주시는 식사 시간이 매번 기다려졌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젊은 나이였던 걸까? 매번 나는 밥을 정말 많이 먹었다. 지금은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을 달래가며 과식하지는 않는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인터뷰 방법도 배운다. 대한축구협회 미디어 담당자가 인터뷰에 앞서 어떤 질문을 받을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등, 가이드라인을 건네주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많은 방송사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서면 너무 긴장해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연륜이 쌓인 요즘은 인터뷰 스킬이 많이 늘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제일 고마운 사람을 소개하자면 ‘절친’ 김도연(인천현대제철)이다. 앞서 얘기했듯 어릴 적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낯가림도 심했다. 여자 U-19 대표팀 소집에서 나는 룸메이트가 없어 난감했다. 혹시 다들 나와 함께하기가 싫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속상했다. 그러던 차에

도연이가 먼저 방을 같이 쓰자고 내게 말을 걸어줬다. 그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도연이에게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도연이는 자기 주관이 확고하다. 주변 얘기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전진한다. 나도 이런 부분에서는 비슷한 성향이라 룸메이트가 되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단짝으로 지낸다. 도연이는 솔직하다. 축구든 일상이든 내가 친구라고 해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얘기해준다. 때때로 의견 충돌이 있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냉정하게 자기 의견을 얘기해준다. 이런 친구를 만났다는 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였다.

아시안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 없이 명단을 꾸렸다. 대표팀에서 나를 불렀더라도 출전하기 어려웠다. 지난 월드컵 독일전에서 다쳐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혹시나 대회에 맞춰 복귀할 수 있을까 싶어 의무 트레이너와 논의해봤지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 소속팀을 찾는 일도 동시에 진행되는 바람에 이번 아시안게임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중계방송으로 응원하는 쪽을 선택해야 했다.

아시안게임은 월드컵, 아시안컵 등 다른 대회와 달리 종합대회라서 축구선수들에겐 색다른 경험이다. 과거 대회에서는 선수촌에서 지냈다. 규모가 크다 보니까 축구 경기만 열리는 대회보다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종목별로 출전 가능 스태프 숫자도 줄어드는 만큼 대표팀 규모 자체가 크게 줄어든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평소 교류할 일이 없던 다른 종목 선수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식사 장소나 선수촌을 걷다 보면 다른 종목 선수들과 마주친다. 먼저 말도 걸고 인사도 나누면서 친해졌던 기억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여자 축구 종목이 항저우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개최되는 탓인지 모르지만, 축구 선수단 숙소를 따로 잡았다.

이어서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월드컵 경기 하나하나 모두가 소중한 기억이다. 사람들은 내가 골을 넣었던 2015년과 2023년 대회를 자주 이야기한다. 사실 내가 잊을 수 없었던 경기는 2019년 프랑스 월드컵 개막전이었다.

경기에서크게 패해서 마음이 상한 것과는 별개로 뜨거웠던 경기장 분위기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월드컵 개막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강인 선수가 뛰는 파리생제르맹의 홈경기장인 파르크데프랭에서 열렸는데 관중이 무려 4만 5천 명이나 들어왔다. 내가 뛰어본 경기 중에서 아마 가장 많은 관중수였던 것 같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뛰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 그래서 미국에 갈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다. 관중이 너무 많다. 미국 팬들은 매너도 좋다. 경기에서 패한 우리에게까지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다. 상대에 대한 야유 같은 건 없다. 일본에서 뛸 때, 소속팀 팬들이 상대에게 막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사실 여자 축구에서는 그런 경험이 흔하지 않다. 그런 분위기에서 뛰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월드컵은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운동장이나 훈련장 시설의 관리가 워낙 좋아서 운동할 여건이 완벽하다. 얼마 전 호주-뉴질랜드 월드컵도 주최 측이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게 느껴졌다. 외국 출전국의 경기에도 관중이 많았다는 점이 특히 부러웠다.

물론 내가 골을 넣었던 경기도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스스로 큰 경기에 강하다고 자부한다. 2015년 스페인전이 그랬다. 팀이 위기일 때 골을 넣어 분위기를 뒤집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스페인전에서 우리는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가고 있었다. 역습 기회가 생겨 나는 하프라인을 넘어 전력 질주로 포워드 위치로 올라갔다.

(지)소연이가 (강)유미에게 연결하는 순간, 나는 속으로 ‘이거 무조건 골문 앞으로 올라온다’라고 생각했다. 유미의 플레이스타일을 알고 있어서 죽어라 뛰어가 기다렸다. 볼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다가왔고 내 머리를 지나 골망을 흔들었다. 간절함이 닿은 것 같았다. 지난 독일전에서도 ‘하나만 오면 무조건 넣는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볼이 내 발 앞으로 다가왔고 침착하게 슈팅을 때렸다. 그때도 나는 정말 간절했다.

월드컵 경기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과 기회였다. 전 세계의 뛰어난 여자 축구 선수들이 한데 모여 뛰는 이 특별한 장소에서 나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경험을 토대로 더욱 발전해 나가고 싶다.

강한 멘털과 능동적 습관이 필요하다

지난번 대회에서 우리는 2패 후,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과 비겼다. 경기 전 워밍업을 하면서 질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팀 분위기를 보면서 그런 느낌이 딱 왔다. 경기 중에도 ‘괜찮다. 잘만 버티면 이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국과 비겼으니까 잘했다고 많은 분께서 격려해주셨지만, 독일전이 끝나고 솔직히 나는 화가 났다.

1차전부터 이렇게 뛰었으면 우리는 16강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나는 ‘유종의 미’라는 말이 지겹고 너무 싫다. 우리는 왜 맨날 ‘유종의 미’만 거두는 걸까? 우리의 제일 나쁜 습관은 바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본 모습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는 목표를 8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우리 팀은 상처와 실망에 휩싸였다. 그 순간 우리는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이제는 ‘유종의 미’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강한 멘탈과 능동적인 습관이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멘탈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패배와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더 강하게 일어서겠다는 다짐을 했다. 팀 전체가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한 몸이 되어 나아가야 한다.

팀원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능동적인 습관을 기르고자 노력했다. 훈련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려고 했다. 우리는 함께 고군분투하며,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

월드컵에는 아직 기회가 많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펼치기로 했다. 새로운 전술과 기술을 연마하고, 상대팀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여 최적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강한 의지와 단단한 결의를 가지고,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쓸 것이다. 힘을 모아 한 팀이 되어 승리를 향해 나아가겠다. 우리의 꿈과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며, 세계에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줄 것이다.

끝나지 않은 도전, 앞으로의 비전

월드컵이 끝나더라도 우리의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이 대회는 우리의 축구 인생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많은 경기와 더 큰 목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를 통해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하고, 팀은 더 큰 성과를 이룰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발전과 팀의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팀으로서의 유대감과 협력을 강화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여정을 걸어갈 것이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팬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전할 것이다. 우리는 끝없는 도전을 즐기며, 열정과 인내로 우리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 이것이 우리의 축구에 대한 약속이며, 앞으로의 비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함께 뛰어가는 동안 느끼는 즐거움과 보람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함께 나아가며,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가겠다.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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